가짜가 진짜 되면, 진짜 또한 가짜요.
무(無)가 유(有)되는 곳에서는 유(有) 또한 무(無)로다(홍루몽).
필자의 여의도 강연에 참석했던 한 언론인이 항의성 메일을 보내왔다. 시중에서 모두들 미중전쟁을 우려하는데, 왜 ‘미중 패권전쟁은 없다’고 하느냐? 그것은 내 출판물 제목과도 같은 것이었다. 전쟁이냐? 아니냐? 과연 무엇이 진짜일까? 나는 소상하게 답변했다. 이 글도 그 맥락의 연장이다.
주도권을 쥔 쪽은 미국이다. 그들은 남중국해의 군사적 긴장에 온갖 공을 들인다. 뉴스에 감초다. 간혹 대만 해협과 한반도 긴장도 끼어든다. 아프간 철수도 중국 압박을 위해서라고 한다. 그런가 하면, 한편에서 미국 투자자들이 돈 보따리를 들고 중국시장으로 달려간다. 금년에도 이런 추세는 가속화하는 추세다. 희한한 ‘이중구조’다.
오바마가 군사적 압박에 착수한 이래, 지난 10년 동안 남중국해는 미국 첨단 무기를 자랑하고 훈련하는 곳으로 변했다. 그 뿐이다. 홍콩과 신장위구르 인권 문제도 썰물이다. 그러나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유독 중국시장은 달궈지고 있다.
이런 양국의 모습을 수많은 주변국들이 놓칠리 없다. 그리고 자세를 고치며 주판을 튀긴다. 대립과 협력!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지는 별개다. 양 대국의 시장을 보면 된다. 실리를 챙기면 된다. 전쟁은 식어가고, 시장은 열이 오른다. 우리 한국 정부도 ‘양자택일은 없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동남아 여러 나라들과 다르지 않다.
이런 미국의 이중 전략이 ‘꽃놀이패’일까? ‘딜레마’일까? 아직은 알 수 없다. 게임은 이제 시작 단계다. 백악관은 압박에 몰두하고, 월스트리트는 투자에 집중한다. 중국공산당은 지난 7월, 창당 100주년 기념식에서 이런 얘기를 곁들였다. ‘미래여! 니하오!(未來! 你好!)’ 모든 것은 다가오는 시간이 말해줄 것이라는 자신감이다. 그러나 백악관(현 안보보좌관 제이크 설리번)은 장담한다. 미국은 종합국력에서 월등하다. 만에 하나, 시장 규모에서 추월당하더라도 미국 패권의 위상은 끄떡없다. 둘 다 조금도 물러설 기세가 아니다.
그들이 벌이는 이중구조의 내면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남중국해 대립 중에도 극적으로 타협하는가 하면(트럼프 대선 당시), 투자 시장에서는 언제나 수 싸움이 치열하다(양국 증시 맞불). 양국 모두 ‘상인 본색’이다. ‘신냉전’이 무슨 말인가? 20세기 냉전을 잊었는가? 잔혹했다. 그 시기에 겪은 한국전쟁을 잊을 수 있는가? 전쟁 트라우마를 제대로 컨트롤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기초 역량이다.
유념하자. 지금 양 대국이 벌이는 피 말리는 경쟁은 국익 극대화를 겨냥한 것이다. 파국이 아니다. 그들은 알고 있다. 국익을 놓치면 패권도 잃는다는 것을. 남중국해와 인도태평양의 연합 군사훈련은 부록이다. 본론은 시장이다. 그들이 바보가 아닌 것처럼 우리도 바보가 아니다!
‘G2’란, 그들의 전성시대를 말한다. 서학개미를 보라! 우리는 매일 신기록을 이어가는 미국 증시와 함께 살고 있다. 우리의 중국 수출을 보라! 세계 최고의 성장률을 이어가는 다이내믹한 거대 시장이 바로 우리 옆에 있다. 그들은 전대미문의 번영을 함께 구가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도 그들과 함께 있다.
양국의 상호 투자는 줄기차게 뻗어간다. 우선, 그들의 투자 얼개를 열어보자. 2020년 말 현재, 양국의 상호 주식 및 채권 투자(금융 투자)는 3조3천억 달러, 천문학적인 규모다. 살벌한 양국 관계를 감안하면 이해하기 어렵다. 이는 공식 수치의 거의 두 배 수준인데, 이런 차이는 조세 피난처 이용 등 국제증권 투자의 복잡한 구조에서 비롯되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미국의 중국 투자는 1조2천억 달러, 그중 주식 1조1천억 달러, 채권 1천억 달러다. 중국은 미국에 2조1천억 달러를 투자, 그중 약 1조1천억 달러는 미재무부 채권(TB) 매입분이다(이상 로디움 그룹 자료). 미국 기축통화의 발권력과 중국의 거대 무역흑자가 만들어낸 수치다. 사람들은 궁금하다. 향후 5년 내, 미국 투자자들은 중국시장에 얼마나 더 투자할까?(다음 편에서)
한광수
현재 (사)미래동아시아연구소를 운영하며 한중관계 연구와 실무에 종사하고 있다. 인천대 동북아국제통상학부 교수를 역임했다.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와 동대학원 경제학과를 거쳐 미국 밴더빌트 대학 박사과정 수학, 베이징대학교 경제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9년 해외경제연구소에서 중국 경제 연구를 시작하여 국제경제연구원, 산업연구원, 외무부 파견, 중국사회과학원 경제연구소 방문학자, 베이징대학교 베이징시장경제 연구소 연구원 등으로 일했다.
1991년부터 1996년까지 베이징에 주재하면서 주중한국대사관, 한국무역협회, SK, 한솔제지, 현대건설 등의 현지 고문으로 일했다.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중국 고문(2003~2010), 중국 프로그램 자문(1998~2007), KBS 객원해설위원, 동북아경제학회와 현대중국학회 고문, 비교경제학회 이사 등으로 활동했다.
주요 저서로 <미중관계의 변화와 한반도의 미래>, <중화경제권시대와 우리의 대응>, <중국의 잠재력과 우리의 대응>, <현대 중국의 이해>(공저) 등이 있다. 중요 논문으로 <글로벌금융위기 이후 한중 교역협력구조의 변화>, <미중경제협력의 불안정성과 한국경제>, <중국 자본시장 개방의 특성>, <최근 미중 통상관계의 특성>, <중국 정치체제 및 외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