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데일리 = 심민정 기자ㅣ직장 상사로부터 받은 성희롱 피해 사실을 퇴사하면서 사내메일로 폭로, 회사 동료들에게 보냈더라도 명예훼손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명예훼손 사건에서 문제된 사실이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라면 비방할 목적은 부정된다는 판례에 따라서다.
24일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정보통신망법 위반(명예훼손) 혐의를 받은 A씨의 상고심에서 원심의 벌금 30만원 선고를 무죄 취지로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동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채용·신입사원 교육을 담당했던 B씨는 지난 2014년 8월 에스알에스코리아 주식회사(KFC)에 입사한 A씨와 술자리에서 테이블 아래로 A씨의 손을 잡거나 10여차례 "오늘 같이 가요", "남친 이랑 있어 답 못 넣은거니", "집에 데려다 줄게요"등 의 문자 메세지를 보냈고, A씨는 답을 보내지 않았다.
이후 A씨는 2016년 3월 다른 매장으로 발령을 받고 다음달인 4월 사직 의사를 밝힌 후 '성희롱 피해 사례에 대한 공유 및 당부의 건'이란 제목의 글을 전국 208개 매장 대표 및 본사 직원 80여명에게 메일로 보냈다. 해당 이메일에는 B씨로부터 받은 성희롱 피해 사실이 담겼다.
하지만 A씨는 B씨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가 노동당국에 대표이사를 상대로 진정을 제기하고 사건이 혐의없음(증거불충분)으로 행정종결 처리된 이후다.
1심과 2심은 A씨가 비방을 목적으로 이메일을 보냈다며 유죄로 봤다. 원하지 않은 인사 발령을 받게 되자 돌연 B씨의 과거 행동을 문제 삼았다고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당시 유부남인 B씨로서 적절하지 않은 행동이더라도 관심을 보이는 남자의 행동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며 "성추행,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해도 A씨가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었는데도 메일을 보냈다"고 벌금 30만 원을 선고했고, 2심 판단도 같았다.
하지만 대법원의 해석은 달랐다. 대법원 재판부는 "이메일은 A씨의 직장 내 성희롱 피해 사례에 관한 것으로 회사 조직과 구성원들의 공적인 관심 사안"이라며 "비방할 목적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고 범죄의 증명이 이뤄졌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 사회의 가해자 중심적 문화와 인식, 구조 등에 비춰볼 때 A씨로서는 2차 피해의 불안감을 가질 수 있다"며 "신고하지 않다가 퇴사를 계기로 이메일을 보냈다는 사정으로 비방의 목적이 있었다고 추단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