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데일리 = 강성혁 기자ㅣ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이사장 신용도)의 유병선 사무총장은 4월 23일(금) ‘제58회 법의 날’을 맞아 출소자의 재범방지를 위해 힘써온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유공훈장을 수상했다.
이번 포상은 ‘제58회 법의 날’을 맞아 법치주의 확립을 통한 인권보호 증진 및 법률문화 발전에 기여한 유공자를 대상으로 실시했다. 포상규모는 훈장 7명을 포함해 포장, 정부표창, 법무부장관표창 등 총 40명이다. 법무부는 행정안전부 정부포상 업무지침에 따라 법과 제도를 기반으로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 인권이 존중받는 사회 구현을 목적으로 매년 법의 날을 기념행사를 개최해 유공자 포상을 추진하고 있다.
공단 유병선 사무총장은 1990년 입사한 이래 32년간 출소자들의 재범을 막고 그들을 우리 사회에 안정적으로 복귀시키기 위해 공감과 포용의 정신을 실천한 공로를 인정받아 이번 기념식에서 국민훈장 목련장을 수상하게 됐다.
특히 출소자들의 안정적인 사회복귀를 위한 힘은 가족에서 나온다는 믿음으로 주거지원 사업을 적극 시행해 가족이 해체되지 않고 집이라는 따뜻한 공간에 모여 살 수 있도록 지원했다. 또한 최근에는 수형자 가족지원사업을 시행해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가족들에게 경제, 학업, 주거 등 다방면의 지원을 통해 사회에 관심을 전달했다. 허그일자리지원 프로그램으로 대표되는 취업지원 등 출소자에게 부족한 부분을 먼저 파악하고 공감하는 제도를 선제적으로 지원해 재범을 막고 우리 사회가 안전한 대한민국으로 향해 한 단계 진일보하도록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
올해는 보다 폭넓게 출소자들을 지원할 수 있는 독자법률 제정 및 법무보호대상자별 맞춤형 서비스 제공을 위한 빅데이터 기반 AI 플랫폼 사업(데이터플래그십 사업) 등이 포함된 핵심전략과제를 기획해 포스트 코로나, 4차 산업혁명 등을 대비한 새 시대의 법무보호서비스 출범을 준비하고 있다.
유병선 사무총장은 “출소자의 재범방지를 위해 힘써온 공단 임직원들과 자원봉사자들 그리고 유관기관 등 협조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며 “앞으로도 재범방지 중추기관이라는 공단의 임무에 맞게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힘써 일하겠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 저의 작은 아버지가 돼 주세요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에 31년간 근무하며 위기 청소년과 범죄 전력자들의 온전한 사회 정착을 위해 열정으로 헌신한 유병선(59세·공단 사무총장) 님의 가슴 벅찬 아름다운 이야기
·외국에서 날아든 소식
2020년 4월 22일. 이제 저에겐 또 하나의 잊을 수 없는 날이 됐습니다. 퇴근 시간이 지나 7시가 넘어 울린 메시지. 배현수(가명). 지금은 35살! 어른이 되어버린, 과묵했던 그 아이. 저는 15년 넘게 흘러버린 그 시절을 회고해 봅니다.
·어색했던 우리, 18살 배현수를 만나다
2007년 서울시 은평구 역촌동 주택가에 자리한 ‘청소년의 집’에서 배현수(당시 18세)를 만났습니다.
성인들의 재범방지 업무를 일선에서 지원하다가 처음으로 소년원을 다녀오거나 보호관찰 중인 청소년들이 대다수인 청소년의 집 아이들을 접하게 됐습니다. 경험이 일천했던 저는 따뜻한 마음과 온화한 미소로 대하기보다는 엄격함이 선행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습니다. 아이들은 100% 소위 결손 가정에서 성장했고 심지어 고아들도 있었습니다. 어찌해야 하나,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고민과 불면의 시간이 계속됐습니다.
현수도 그런 아이들 중 한 명이었습니다. 지금은 결혼을 하고 워킹 홀리데이 비자로 호주로 건너가 용접공으로 당당한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당시는 그저 인터넷 범죄 전력이 있는 고교 중퇴의 이른바 문제아였을 뿐입니다.
·먼 길을 함께 걸으니 들을 수 있었고 볼 수 있었습니다
청소년의 집 아이들은 성취 경험의 부족으로 자존감이 높지 않은 아이들이 대부분입니다. 편부모, 조손가정 등 다른 친구들과는 다른 가정환경에서 자랄 수밖에 없었던 그 청소년들에게 사회는 ‘의지와 노력으로 스스로 일어나야 하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과연 그런가요?
아이들에게 스스로 무엇인가를 해냈다는 자신감과 성취감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닫힌 가슴을 열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공유해야 했습니다. 무엇을 해야 하나.
당시 대학생들의 국토 대장정이라는 걷기 프로젝트에 착안한 저는 조금은 힘들어 보이겠지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고자 ‘나를 극복하기’ 국토순례 대장정 프로젝트를 추진했습니다.
도전하고 싶었습니다. 이 아이들과 함께라면 저도 해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드디어 2009년 5월 19일. 서울에서 강원도 춘천까지 총 100km, 2박 3일의 대장정을 시작하게 됐고 그 후로 매년 5회에 걸쳐 걸으며 아이들의 마음을 담았습니다.
한때는 두려움의 대상이었을 경찰차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그 아이와 저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 아이들이 살아온 이야기... “많이 힘들었겠구나, 그래. 그래. 그래…” 제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아이를 힘껏 안으며 저도…
·19세 청소년, 공단 제1호 창업지원 대상자로 선정되다
그 아이들 중 유난히 눈에 띄는 아이가 하나 있었습니다. 늘 과묵하고 얼굴에는 어딘가 불만이 있어 보이는 한 키 큰 여드름 투성이 배현수. 청소년의 집에서 속내를 보이지 않던 그 아이도 함께 걸으며 이런저런 말을 걸어보니 어느샌가 제게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가정의 경제적 어려움으로 어머니의 가출, 사채업자의 행패, 동생의 가출 등 그 숨 막히던 시절.
그러나 그 아이는 대입검정고시를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고, 그 무렵 공단은 창업지원 사업을 최초로 시작하게 돼 그 지원대상자로 저는 배현수를 제1호 창업지원 대상자로 추천해 2009년 6월 24일 드디어 3800만원의 임차보증금을 지원받아 ‘우리 농산물’이라는 상호로 창업을 하게 됐습니다.
장사 수완이 남달랐던 그는 너무나도 열심히 했고 하루 매출이 2∼300만원이 넘어서자 하루에 잠을 한 두 시간 자는 무리수를 두기 시작했고, 그러면 안 된다고 여러 번 충고를 했음에도 성공을 위해 이 정도는 이겨낼 수 있다며 고집을 부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4시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불안했습니다. 역시나 현수였습니다. “보호자를 오라고 하는데 생각나는 사람이 소장님밖에 없었습니다.” 병원이라고 했습니다. 새벽에 가락동으로 물건을 가지러 가던 중 졸음운전으로 서울 외곽순환도로 가로등을 들이 받아 사고로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응급실에 있다고 했습니다. 병원으로 달려가는 차 안 뉴스에서도 현수의 교통사고가 안내되고 있었습니다. 병원 응급실에 도착하니 한쪽 구석 침대에 현수가 병원 하얀 가운을 덮고 누워있었습니다. 가운을 들추니 손가방 하나를 가슴에 안고 눈을 뜨는데 가방을 잡아당기자 빼앗기지 않으려 하다 “소장님”하며 가방을 내주었습니다.
여기저기 살펴보니 큰 부상은 없어 보였으나 많이 놀라있었고 가방을 내준 뒤 현수는 깊은 잠을 자기 시작했습니다.
손가방을 열어보니 주문한 채소(호박, 감자, 오이, 배추, 무, 고추 등) 목록과 현금 800만원이 들어있었습니다.
·작은 아버지라 부르겠습니다.
지금은 아내와 함께 호주에서 용접공으로 살고 있는 배현수는 2년여 후 귀국을 한다고 합니다. 이런저런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던 그 아이가 제게 이런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총장님은 그때 현직에 안계시면 작은 아버지라고 호칭 바꾸겠습니다.”
“그래, 고맙다. 우리 인연 하늘에 닿을 때까지 이어가 보자꾸나…”